2008년 11월 11일
문자친구라고 들어 보셨나요?
'문자친구' 라고 들어 보셨나요.?
들어보다 마다요. 한때 문자친구의 세계를 재패했던 본인이기도 한데(뻥). 아마 요즘 학생들이라면 알고 있을 친숙한 단어일테다. 아마 20대 이상의 분들이 이런 말을 듣는다면 조금은 갸우뚱 하지 않을까?
무슨 친구는 얼굴보는 사인데 문자로 친구를 먹어? 하시겠는데, 사실 요게 최근에 꽤나 시장(?)이 크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굳이 어느 커뮤니티라고 꼭 꼬집지 않더라도 인기있는 친목 클럽 및 까페에 가입해보면 문자친구 만드는 메뉴는 꼭 하나씩 달려있기 마련이다. 그런 곳에서 각자 간단한 프로필을 작성하고, 연락처를 적어놓고, 마음에 들면 문자를 주고 받는.
난 중학교때 쓰던 요금제가 문자무한이어서(..) 아니 결코 딴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정말 문자가 무한이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써도 남아도는 문자를 어디다 쓸 곳이 없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문자친구를 만들기로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내 휴대전화에 "문차친구" 라는 새 전화번호부 그룹이 생기고 어느새 이 일에 맛을 들인 나는 만들지 얼마 되지 않는 그룹에 수십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저장하고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문자질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초인의 시절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문자 하나하나를 답장 하나 헷갈리지 않고 보낼 수 있었을까.
어릴 때야 내 주변에는 없지만 어딘가에는 있는 사람하고 남모르게 대화를 한다는 것이 이유도 모르게 설레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 보면 굉장히 영양가 없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떠올리게 되고 만다.
내가 그때 단순히 심심함을 풀 구실이라는 허울을 벗고 조금 더 진지하게 그들에게 다가갔다면 혹시 그들과 나는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요새야 바쁘니 전화가 있으나 없으나 소용이 없는 탓에 휴대전화를 없앴지만 예전에는 정말 내 몸의 일부처럼 가지고 다녔었더랬다. 어느샌가 내가 휴대전화의 수족이 되는 걸로 모자라서 이제 나는 기계를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버리고 만 것이다.
문자친구가 생겼을 때 항상 첫 말을 끊는 말투가 하나 있다. 아마 문자친구를 해 본 사람들은 다 알만한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심심해" 였다. 내가 겪어본 모든 문친들은 대부분 이 한마디로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아마 우리들은 소통의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저 자신의 솔직한 기분, 사실 이런 말이 자신의 솔직한 기분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좀 더 후에 가서야 알게 됐었지만, 그 기분만을 표현하는 것으로 상대가 내게 관심을 가져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무렵 친구들이 곁에 있었음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 원인이란 소통이 자유롭지 못해서가 아닐가 싶다. 예전에야 어른들이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들어야 했으니 그 속에 암묵적인 소통의 방법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획일적인 방향이라 했을 지라도 분명 사람과의 소통에선 단 하나만큼은 도움이 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새의 청소년들은 누간가가 간섭하고, 충고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고, 그리고 사는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 뿐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좋은 휴대전화를 사더라도 신기능은 설명서를 보지 않으면 잘 다룰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어느샌가 바쁘게 지나 온 우리 일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권리와 자유를 찾는 데에만 집중했지, 후에 그러한 자유를 누릴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법같은 건 전혀 마련해 놓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들의 이 쓸모없는 발악이 언제까지 지속되는 악습으로 남아있을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들어보다 마다요. 한때 문자친구의 세계를 재패했던 본인이기도 한데(뻥). 아마 요즘 학생들이라면 알고 있을 친숙한 단어일테다. 아마 20대 이상의 분들이 이런 말을 듣는다면 조금은 갸우뚱 하지 않을까?
무슨 친구는 얼굴보는 사인데 문자로 친구를 먹어? 하시겠는데, 사실 요게 최근에 꽤나 시장(?)이 크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굳이 어느 커뮤니티라고 꼭 꼬집지 않더라도 인기있는 친목 클럽 및 까페에 가입해보면 문자친구 만드는 메뉴는 꼭 하나씩 달려있기 마련이다. 그런 곳에서 각자 간단한 프로필을 작성하고, 연락처를 적어놓고, 마음에 들면 문자를 주고 받는.
난 중학교때 쓰던 요금제가 문자무한이어서(..) 아니 결코 딴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정말 문자가 무한이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써도 남아도는 문자를 어디다 쓸 곳이 없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문자친구를 만들기로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내 휴대전화에 "문차친구" 라는 새 전화번호부 그룹이 생기고 어느새 이 일에 맛을 들인 나는 만들지 얼마 되지 않는 그룹에 수십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저장하고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문자질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초인의 시절이었다. 어떻게 그 많은 문자 하나하나를 답장 하나 헷갈리지 않고 보낼 수 있었을까.
어릴 때야 내 주변에는 없지만 어딘가에는 있는 사람하고 남모르게 대화를 한다는 것이 이유도 모르게 설레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 보면 굉장히 영양가 없는 일이라는 걸 다시금 떠올리게 되고 만다.
내가 그때 단순히 심심함을 풀 구실이라는 허울을 벗고 조금 더 진지하게 그들에게 다가갔다면 혹시 그들과 나는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요새야 바쁘니 전화가 있으나 없으나 소용이 없는 탓에 휴대전화를 없앴지만 예전에는 정말 내 몸의 일부처럼 가지고 다녔었더랬다. 어느샌가 내가 휴대전화의 수족이 되는 걸로 모자라서 이제 나는 기계를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버리고 만 것이다.
문자친구가 생겼을 때 항상 첫 말을 끊는 말투가 하나 있다. 아마 문자친구를 해 본 사람들은 다 알만한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심심해" 였다. 내가 겪어본 모든 문친들은 대부분 이 한마디로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아마 우리들은 소통의 방법을 잘 몰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저 자신의 솔직한 기분, 사실 이런 말이 자신의 솔직한 기분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좀 더 후에 가서야 알게 됐었지만, 그 기분만을 표현하는 것으로 상대가 내게 관심을 가져 줄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무렵 친구들이 곁에 있었음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그 원인이란 소통이 자유롭지 못해서가 아닐가 싶다. 예전에야 어른들이 하는 말은 곧이곧대로 들어야 했으니 그 속에 암묵적인 소통의 방법이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이 획일적인 방향이라 했을 지라도 분명 사람과의 소통에선 단 하나만큼은 도움이 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새의 청소년들은 누간가가 간섭하고, 충고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고, 그리고 사는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 뿐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좋은 휴대전화를 사더라도 신기능은 설명서를 보지 않으면 잘 다룰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어느샌가 바쁘게 지나 온 우리 일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권리와 자유를 찾는 데에만 집중했지, 후에 그러한 자유를 누릴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법같은 건 전혀 마련해 놓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들의 이 쓸모없는 발악이 언제까지 지속되는 악습으로 남아있을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 by | 2008/11/11 02:05 | 건강한 하체로 태클걸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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