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8일
오늘의 저녁은 대충만든 수제비다.
오랜만의 휴일인데 집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 흉악하고 극악무도한 배고픔이란 놈은 평소 부지런한 저를 끝없는 수면과 게으름의 밑바닥으로 추락시키더군요. 요놈을 어떻게든 물리치기 위해서 빨래도 널고, 방 청소도 싹 하고, 화장실 청소도 했지만..
일이 다 끝나니 자연스레 몰려오는 게으름의 유혹. 그리고 어느새 들리는 꼬르륵 소리.
이럴 순 없다! 하면서 필사적인 외침을 내질렀지만 게으름은 절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도서관에 가려고 했는데 너무 추운 탓에 포기(...) 절대 움직이기 싫어서가 아니예요.
그래서 같이 사는 형과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회의를 했습니다.
"우리 제대로 된 밥을 먹지 않으면 곧 굶어 죽을거야."
그렇습니다. 우린 게으름의 마수에 눌려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여태 한 끼도 먹지 않았다는 걸요(...)
"그럼 뭐 해먹지?"
"뭐 먹을까?"
"..."
"..."
게으름은 그렇게 우리에게 생각할 두뇌마저 앗아갔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몇 십분이 흘렀습니다. 배에서는 계속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울렸구요.
...
..
.
..
...
어느새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몇시야?"
"몇 시지?"
시계를 보았습니다. 전 울고싶었습니다. 게으름은 소중한 점심시간마저 앗아간 것입니다.
"6시야.."
"우리 뭐 했냐..."
다시금 정좌를 하고 정중하고 경건한 자세로 마주앉아 돌아가지 않는 머리에 참기름을 칠했습니다. 허나 이미 굳어서 허물어진 맷돌이 잘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저녁 메뉴 하나 생각하는게 무지 힘들더군요.
"그냥 김치찌개나 해 먹자."
"그러자."
그리고서 두 사람은 장을 보러 집을 나섰습니다. 머리를 풀기 위해 약간의 말장난(...) 을 적극 활용했지요.
"형 그 모자 쓰지 마."
"왜?"
"폐인 같음."
"헐퀴."
...... .
....
...
..
.
...
.....
그리고 형은 모자를 벗었습니다.
"아무거나 좀 써. 폐인 티 좔좔."
"....."
그리고 형은 제가 쓴 모자랑 바꾸잡니다.
"오 멋있네?"
형이 절 보고 말했습니다.
"난 원래 잘생겨서 뭘 입어도 멋있어."
......
....
..
..
......
그렇게 긴 시간의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두뇌는 다시 굳어져만 갔습니다. 추위탓에 안그래도 잘 돌아가지 않는 두뇌가 아예 빙산 한복판에서 얼어버렸지요.
그리고 마트에 도착한 순간 제 주부근성이 드러났습니다.
"오!! 양파가 왜 이렇게 싸지? 오. 감자 싸다. 이 큰게 3개에 천원이래. 오늘 수제비나 먹을까?"
"좋다!"
아마 주부근성은 식재료를 봤을 때만 깨어나나 봅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매우 단순한 이유로 오늘 저녁은 수제비로 결정됐씁니다.
마치 저녁장보러 나온 주부처럼. 아니 사실 그 말이 사실이지만. 여러 식재료를 쓸어담았습니다. 양파와 호박, 감자, 양송이(요게 펄펄 끓는 국물에 들어가 익으면 굉장히 맛있더군요 'ㅅ'), 청량고추, 그리고 바지락.
"오. 바지락 싸다. 수제비에 넣어 먹을까?"
사실 어제 저녁에 일이 끝나고 바지락 칼국수가 맛있는 집에 갔었으나 자리가 없어서 못먹었던 것이 아쉬어서 바지락을 냉큼 집은 게 아닙니다. 절대 아니예요.
"형 집에 밀가루 없지?"
"없지."
그리고 1kg짜리 밀가루 한 봉. 그리고 맥주를 사러 갔습니다.
"헐퀴. 욀케 비싸염."
"그러게..."
저는 이 순간 매우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왜 우리 동네 홈플러스에는 싼 맥주가 없냐구요. 할 수 없이 맥주는 편의점에서 버드와이져 한 병씩 사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커다란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처럼 당당하게 집으로 귀환루트를 탔습니다. 그 길이 매우 추워서 집에 와보니 손이 뻘겋게 돼 있었다는 건 잠시 접어두고요.
.....
..
....
....
..
"형! 바닥에 신문지 좀 깔아줘!"
"응."
"형! 여기 냄비 물기좀 싹 씻어줘."
"응."
"형! 나 힘들어. 반죽 좀 교대로 하자."
"응."
옙. 손계모와 김데렐라의 탄생입니다. (주: 제가 손 동생, 형이 김 형.) 그나저나 오랜만에 주무르는 수제비 반죽에 손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습니다. 사실 더 쫄깃한 반죽을 위해서 감자전분을 사고 싶었으나 밀가루의 반의 반도 안 돼는 양에 가격은 두 배 가까이 되는지라 걍 드롭.
그리고 바지락와 양파 등등으로 먼저 우려낸 국물이 펄펄 끓었습니다. 그 안에 슬라이스 한 호박과 양송이, 두툼하게 썬 감자와 손으로 쩔떡쩔떡 뜯어낸 수제비 반죽과 다진 쪽파를 다이빙 시켰습니다.
그리하야 완성된 자취생표 수제비.

크아앍. 이 맛에 삽니다. 청량고추가 4개나 들어가니 매콤하고 칼칼하고. 거기다 바지락으로 낸 국물이 어찌 그리 시원하든지. 맥주랑 아주 궁합이 딱입니다요.
야밤에 즐거운 테러 되세요 ^^
# by | 2008/11/18 22:49 | 일기장 | 트랙백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배고파요!!! 엉엉
제가 음식하면 음식이 아니라 독약이라서;;